현재 위치
  1. Artists
현재 위치
  1. Artists

Artist

윤진섭
Yoon, Jinsup

a

예술은 삶처럼 불안정하고 불안하고 불편해야 한다

윤진섭은 크리큐라티스트다. 크리틱과 큐레이터 그리고 아티스트의 합성어로서 동시에 비평가이며 전시기획자이고 작가이다. 그리고 윤진섭은 동시에 왕치이고 한큐이고 지족거사이며 뒤죽박죽이고 천둥치는 이 밤에, 이다. 이 외에도 그를 호명하는 이름은 많으며, 앞으로도 계속 새로운 이름이 지어질 것이다. 이 무슨 시추에이션인가. 윤진섭은 개인의 정체성이 고정돼 있지 않다고 본다. 그리고 그렇게 다른 개인들이 있을 것이므로 그들 각각을 호명하는 이름도 달라져야 한다고 본다.
● 고충환 미술비평가 ● 사진 서지연

'사물은 초즈의 치즈를 골랐다(4)' 설치 전경, 아트스페이스 휴

SHOPPING GUIDE

배송 안내

배송은 입금 확인 후 주말 공휴일 제외, 3~5 일 정도 소요됩니다. 제주도나 산간 벽지, 도서 지방은 별도 추가금액을 지불하셔야 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배송비는 6만원 이상 무료배송, 6만원 이하일 경우 3,000원입니다.


교환 및 반품이 가능한 경우

- 주문된 상품 불량/파손 및 주문 내역과 다른 상품이 오배송 되었을 경우 교환 및 반품 비용은 당사 부담입니다.

- 시판이나 전화를 통한 교환 & 반품 승인 후 하자 부분에 대한 간단한 메모를 작성하여 택배를 이용하여 착불로 보내주세요.


교환 및 반품이 불가능한 경우

- 반품 기간(7일 이내) 경과 이후 단순 변심에 한 교환 및 반품은 불가합니다.

- 고객님 책임 있는 사유로 상품 등이 멸실 또는 훼손된 경우, 포장을 개봉 하였거나 포장이 훼손되어 상품 가치가 상실된 경우,

  고객님 사용 또는 일부 소비에 하여 상품 가치가 현저히 감소한 경우, 복제가 가능한 상품 등 포장을 훼손한 경우 교환 및 반품 불가합니다.

  (자세한 내용은  전화 상담 혹은 게시판을 이용해 주세요.)


※ 교환/반품 배송비 유사항 ※
- 동봉이나 입금 확인이 안될 시 교환/반품이 지연됩니다. 반드시 주문하신 분 성함으로 입금해주시기 바랍니다.

- 반품 경우 배송비 미처리 시 예고 없이 차감 환불 될 수 있으며, 교환 경우 발송이 지연될 수 있습니다.
- 상품 반입 후 영업일 기준 3~4일 검수기간이 소요되며 검수가 종료된 상품은 순차적으로 환불이 진행 됩니다.

- 초기 결제된 방법으로만 환불이 가능하며, 본인 계좌가 아니면 환불은 불가합니다.(다른 명 계좌로 환불 불가)
- 포장 훼손, 사용 흔적이 있을 경우 기타 추가 비용 발생 및 재반송될 수 있습니다.


환 및 반품 주소

04554 서울시 중구 충무로 9 미르내빌딩 6 02-2274-9597 (내선1)

상품 정보
Maker Art in Post
Origin Made in Korea
Buy NowRESERVE
상품 옵션
배송
Artist
down up
상품 목록
TOTAL 0
Buy NowRESERVE

마치 양파 껍질 벗기기처럼 개인은 수많은 정체성의 옷을 덧입고 있고, 그 옷을 하나하나 벗을 때마다 매번 다른 정체성을 보여주지만, 옷을 다 벗어던지고 난 연후에라도 ‘다름 아닌’ 바로 그라고 부를 수 있는 실체는 끝내 보여주지 못한다(않는다?). 어쩌면 개인이란 그렇게 다 벗어던진 정체성의 옷들의 무분별한 집합이며 총체일지도 모른다. 다시, 나는 누구인가. 나는 상황논리에 연동되고, 상황논리에 따라서 정의된다. 그래서 하나의 상황에 의해 정의된 나는 상황이 달라지면서 덩달아 변질된다. 결국 모든 가능한 상황에 똑같이 적용될 수 있는 나의 총체, 말하자면 나라고 부를 수 있는 결정적인 실체 같은 것은 없다. 다만 매번 달라지는 상황논리에 반응하고 대처하는, 그렇게 다른 나들이 있을 뿐. 말하자면, 상황이 주체를 낳는다고 말해야 할 것. 작가의 사회적이고 제도적인 주체(다중주체)도, 상황논리가 만든 주체(다중주체)도 알고 보면 바로 이런 맥락에서 이해되어져야 한다. 


그렇게 다중주체 혹은 다중인격 중 한 명인 작가로서의 윤진섭이 전시를 열었다(아트스페이스 휴, 2.7-3.7). 아니, 엄밀하게는 작가 한큐가 전시를 열었다. 전시 제목도 야릇하다. ‘사물은 초즈의 치즈를 골랐다?’ 벌써 제목을 딱 보면 초이스(아님 치즈?)란 말이 최초의 단서가 돼 연이어 초즈와 치즈로 변주된, 그간의 과정이 연상된다. 우연히 떠오른 영어와 불어의 조합으로 구성된 이 말은 당연히 말이 안 된다. 하지만 세상을 살다보면 이처럼 말이 되지가 않는 게 한 둘인가. 그럼에도 아무 일 없다는 듯 잘들 살고 있지가 않은가. 그래서 비트겐슈타인의 말처럼 문제가(문제될 것이) 없으니 해답도 없다. 논리적으로 비약을 해보자면 예술에 관한한 오답도 오독도 없다. 예술이란 정답을 전제한 것이라기보다는 그저 있는 것이고, 그렇게 그저 있음 자체로서 의미가 있는 것. 




<사물은 초즈의 치즈를 골랐다(3)> 

설치 전경, 아트스페이스 휴  




이런 예술의 특수한 존재방식은 이번 전시를 위해 한큐와 함께 오프닝 퍼포먼스를 펼친 대선배 이건용의 행위 작업과도 통한다(오프닝 퍼포먼스에는 이외에도 성능경이 찬조 출연했다). 전시에서 이건용은 신문 꾸러미를 풀어헤쳐 패널 두 개를 꺼냈다. 그리고 그 패널 위에는 “각각 진정한 예술은 더욱 쓸모없는 일을 하는 것이다, 자본이 예술을 리드하면 (       )다, 자본이 없으면 불편할 뿐이다.” 라는 문구가 적혀 있었다. 예술은 쓸모없는 일을 하는 것이다? 예술은 말이 안 되는 걸 실천하는 것이다? 조르주 바타이유는 자본주의의 해악이 경제제일주의와 효율성극대화의 법칙에 있다고 본다. 그리고 이 법칙에 어긋나는 것들은 도태된다. 그러므로 쓸모없는 일이며 말이 안 되는 것도 도태된다. 따라서 거꾸로 보자면, 쓸모없는 일이며 말이 안 되는 것은 동시에 반자본주의적이고 반제도적인 실천논리일 수 있다. 그리고 이건용은 말장난을 한다. 알다시피 영어에서 앞서가는 리드와 납을 의미하는 ‘리드(lead)’는 그 음이 똑같다. 그래서 괄호 부분을 채워 넣어 문구를 완성해 보면, 대략 자본이 예술을 리드하면 예술은 납화하고 경화되고 죽는다는 의미가 된다. 예술과 자본의 밀월관계를 경계한 말이다. 


그리고 공교롭게도 이번 전시의 주제가 예술과 자본이다. 전시에서 한큐는 각각 예술폭탄과 자본폭탄을 터트린다. 이 두 폭탄 중 어떤 폭탄이 더 폭파력이 있을까. 표면적으로 볼 때, 게임이 안 되는 것이지만 그래도 사람들의 의식을 변화시키고 사회를 변화시키고 세계를 변화시키는 예술폭탄의 파괴력을 믿고 싶다. 그리고 예술과 자본과의 관계는 각각 경주로 그리고 팽이치기 퍼포먼스로 변주된다. 이 중 특히 팽이치기 퍼포먼스에 대해서 말하자면, 머리에 각각 예술, 자본, 정치라고 쓴 팽이를 사람들이 채로 쳐서 돌리는 행위 작업이다. 알다시피 팽이치기는 두 개 이상의 팽이가 서로 박치기해 도는 과정에서 가장 오래 살아남은 팽이가 죽은 팽이를 따먹는 놀이이다. 팽이가 쓰러지지 않고 오랫동안 돌게끔 유지하는 것이 관건인데, 채질을 잘 해야 한다. 여기서 채질은 결국 조율의 문제이며 호흡의 문제인 것. 이로써 예술과 자본과 정치가 어느 한쪽으로 쏠리지가 않고 평형관계를 유지하기 위해선 상호간 조율을 잘 해야 하고 호흡이 맞아야  한다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 




<사물은 초즈의 치즈를 골랐다(1)> 

설치 전경, 아트스페이스 휴




이번 전시는 약 한달 간 지속된다. 특이한 것은 전시 내용이 갈 때마다 그리고 볼 때마다 조금씩 달라진다는 점이다. 이것이 첨가되고 저것이 빠진다. 필자가 전시장을 찾은 날에도 작가는 즉흥 퍼포먼스를 하고 있었고, 퍼포먼스와 함께 있던 것이 빠지고 없던 것이 새로이 부가되었다. 그리고 아마도 전시가 지속되는 내내 전시장 풍경은 이렇듯 매번 조금씩 달라져 있을 것이었다. 여기서 작가는 예술을 삶에다가 비유한다. 만약 예술이 삶에 대한 것이고 삶의 흔적을 기록한 것이 맞다면, 삶과 다를 이유가 하나도 없다. 그래서 삶이 가변적이고 예측할 수 없고 불안정하고 우연에 노출된 것이라면 예술도 마땅히 그래야 한다. 그런데 보통 전시라는 것, 이를테면 처음 모습 그대로 보여주다 마는 식의 전시 관행을 이해할 수가 없다. 그런 식의 전시는 말하자면 예술의 죽음이며 무덤과도 같다. 그래서 작가는 예술이 죽지 않도록 매번 따귀를 때려 일깨워줘야 한다. 살아서 움직이게 해야 한다. 


작가는 심지어 자신이 진즉에 직접 제작하고 선보였던 작업에마저 개입해 재해석하고 변주한다. 그동안 자신이 달라진 만큼 작업도 달라지는 것이 맞다고 본다. 그렇게 작업은 매번 달라지는 작가의 정체성과 더불어 살아가고 살아있을 수 있게 될 것이었다. 이를테면 <신촌을 지나가는 여자의 구두 색>(1977년, 서울화랑)이 그렇다. 발표 당시 그대로를 옮기자면, 노란 국화와 노란 크레용 칠을 한 돌과 신촌을 지나가는 여자의 구두 색이라고 쓴 노란 색지를 노란 비닐봉투에 집어넣는 퍼포먼스였다. 그리고 작가는 이 작업을 지금 현재 자기 형편에 맞게 재해석하고 변주한다. 집 주변에서 수거한 폐 가구 조각의 표면을 역시 우연히 손에 넣게 된 노란테이프를 자잘하게 잘라 붙였다. 제목과 노란색이라는 개념(지침?)만 그대로일 뿐, 내용(상황논리?)은 다 바뀐 것이다. 앞서, 주체란 상황논리에 연동되고 상황논리에 따라 바뀐다고 했다. 그렇게 주체가 바뀌면 작업도 바뀌어야 한다. 여기서 노란색을 노란색이라 하지 않고 굳이 신촌을 지나가는 여자의 구두색이라고 명명한 것은 ‘도가도비상도’처럼 색을 색이라고 명명하는 순간 이미 다른 색이 되어버린다는 생각을 담고 있다. 어떤 현상이며 사물대상을 특정의 의미로 가두는 인식론적 관성을 경계하는 것일 터이다. 



<사물은 초즈의 치즈를 골랐다(2)> 

설치 전경, 아트스페이스 휴




작가의 현재진행형 행위 작업에는 반 고흐 그리기도 있다. 지금도 여전히 포스터나 엽서와 같은 종이만 보면 곧잘 반 고흐의 초상을 그린다. 비록 살아생전에 작품 한 점도 못 팔고 죽은 작가이지만 정작 현재에는 부르는 게 값인 아이러니한 상황을 풍자한 것이며, 자본이 예술을 지배하는 냉엄함 현실을 고발한 것이며, 그런 현실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지금도 여전히 그리고 아마도 앞으로도 영원히 살아 있을 반 고흐의 예술혼에 바치는 오마주로 보면 되겠다. 그리고 언제 터질지 모를 다이너마이트처럼 삶이 불안한 만큼이나 예술도 불안정해야 한다. 혈당을 체크하기 위해 매일 같이 채혈하는 것과 같은 일상이 되어야 하고 일상의 기록이어야 한다.  




윤진섭




작가 윤진섭은 1970년대 후반 이건용, 성능경과 같은 쟁쟁한 선배작가들과 함께 당시 전위적인 그룹 <S.T>에 참여하면서 퍼포먼스에 입문했다. 1988년에는 한국행위예술가협회를 창립했으며, 2000년에는 서울국제행위예술제를 조직했고, 최근에는 국제상상대학을 설립하기도 했다. 이후 국립현대미술관 유리벽에 계란 투척하기며 부천역광장 청소하기와 같은 퍼포먼스를 지금까지 꾸준히 이어오고 있다. 그렇게 윤진섭이면서 동시에 한큐이기도 한 작가의, 숨 막히는 세상에 숨통을 트는 종횡무진 행보는 계속될 것이다.

게시물이 없습니다


메모 입력
뉴스레터 신청 시, 퍼블릭아트의 소식을 빠르게 받아보실 수 있습니다.
이메일 주소를 남겨주시면 뉴스레터 구독에 자동 동의됩니다.
Your E-mail Send

왼쪽의 문자를 공백없이 입력하세요.(대소문자구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