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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를 위한, 작가에 의한, 휘트니 비엔날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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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S.A.

Whitney Biennial 2014

2014 휘트니 비엔날레는 입구에서부터 분주한 인상을 준다. 2012년에 비해 참여 작가는 2배로 늘어, 총 103명이 참여했다. 특히 이번 전시는 내년 봄, 렌조 피아노가 설계한 다운타운의 허드슨가 근처 새 건물로 옮겨가기 전에 열리는 마지막 비엔날레이다. 따라서 2달 남짓 전시되는 업타운에서의 마지막 비엔날레를 보기위해 몰려든 관객들 사이를 헤치고 작업을 집중해서 보는 일이 쉽지만은 않았다. 그러나 “푸짐하다”는 이번 비엔날레에 대한 인상은 단지 물리적인 차원에 그치지 않는다.
● 고동연 미술사

공공소유자들 '말라시 리처의 개인적인 오브제들' 2014 Photo Courtesy of Jerry L. Thomps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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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동 큐레이터제 덕분에 층마다 다양한 연령층의 작가의 작품들이 각기 다른 전시방법들로 선보이고 있었다. 그래브너가 기획한 4층에는 전통적인 매체에 해당하는 회화, 조각, 도자작가 36명이 참여했고, 2층 기획자 엘름스의 공간은 아카데미 레코드(Academic Records), 공공소유자들(Public Collector)과 같은 작가 공동체의 아카이브들로 구성됐다. 한편, 영국 테이트 미술관 큐레이터 출신이자 최근 뉴욕 현대미술관(MoMA)의 영화·미디어 담당 큐레이터인 스튜어트 코머(Stuart Comer)가 맡은 3층에는 키스 메이어슨(Keith Meyerson)이나 A.L. 스타이너(Steiner)의 작업들과 같이 벽면을 가득 메운 스펙터클한 설치방법이 눈에 띄었다. 뿐만 아니라 올해 행사는 미국 현장의 작가들을 기획자로 내세워, 비교적 비엔날레의 서클에 포함될 가능성이 적은 지역·연령대의 작가들을 포함시키고 있다는 점에서 휘트니 비엔날레의 본래 취지와 전통을 계승하고 있다. 


휘트니 비엔날레는 잘 알려진 바와 같이 설립자인 휘트니 여사가 1931년 8가에서 동료 작가들을 후원하기 위하여 마련한 ‘스튜디오 클럽’으로부터 유래하였다. 공동기획자들의 약력 또한 비엔날레의 본래 취지에 부합된다. 시카고의 아트 인스티튜트 회화과 교수인 미셀 그래브너(Michelle Grabner)는 화가인 남편과 함께 시카고 작가들의 연대(Chicago Artist Coalition)의 자문위원으로 오랫동안 활동해 왔다. 시카고 출신의 안소니 엘름스(Anthony Elms) 또한 잡지 『하얀 벽(White Wall)』디렉터로서 지역 작가 공동체들과 친밀한 관계를 맺어온 비평가였다. 그렇다면 동부와 서부 위주의 미국 미술계에서 시카고 출신의 작가들에 의한 작가를 위한 비엔날레는 어떠한 득과 실을 지니고 있는가?   



A.L. 스타이너 <비용대비 이윤에 대한 분석> 

2014 사진 및 영상설치 Photo Courtesy of Bill Orcutt




오랜 질문: 회화와 새로운 형식주의(4층)


그래브너는 올해 비엔날레에서 회화를 재조명하고, 전통적인 매체의 물질적인 기반에 주목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실제로 전시장에는 전통적인 매체를 다루는 작가들뿐 아니라 도자예술가, 섬유예술가들의 작업들도 총망라됐다. 아울러 비엔날레 참여 작가의 연령대가 대폭 확장됐고, “중년/여성/작가”들이 다수 포함됐다. 천장부터 이어진 섬유기둥을 만든 작가 쉴라 힉스(Sheila Hicks)는 올해 80세, 3층에 전시된 레바논 출신의 여성작가 에델 아드난(Etel Adnan)은 89세로 고령이다. 작가들은 모더니즘이나 반모더니즘이 오랫동안 관심을 지녀온 캔버스의 물성, 화면의 물성, 편평함과 같은 주제를 매우 개인적이고 개별적인 방식으로 풀어가고 있다. 재클린 험프리스(Jacqueline Humphries)나 도나 넬슨(Dona Nelson)의 회화는 기획자가 언급한 바와 같이 물성을 강조하지만, 이 작품들이 1990년대 등장한 신 표현주의나 1980년대 말에 등장한 유형화된 회화와 차이를 보인다는 점에 주목할 만하다. 


안젤름 키퍼의 작업이 역사적, 정치적, 개념적 의미를 함축하고 있는 물성을 반영했다면, 알루미늄 판 위에 추상화를 그려온 험프리스는 표면의 광택을 사용해서 관람객들의 공간에 대한 인식과 소통을 확대하고자 한다. 즉, 험프리스의 회화는 리히터를 연상시키기도 하지만, 리히터가 회화 자체의 존재론적인 질문을 다뤘던 것에 비해 훨씬 개인적인 의도를 지닌다. 애미 실만(Amy Sillman)과 팸 린스(Pam Lins)는 추상화 뒷면에 도자기를 올려놓고 결합시킨 <펠스(Fells)>(2013-14)를 선보였는데, 이 작업은 회화와 조각을 결합시켜보려는 단순한 호기심으로부터 출발하고 있을 뿐, 이들 작가들은 고전적인 매체이론에 개의치 않아 보인다. 개념미술가들의 캔버스를 연상시키는 시카고 출신의 필 핸스(Phil Hanson)의 작업에서도 인용된 글귀들은 순수하게 작가의 문학적인 관심사(디킨슨이나 블레이크의 시)를 반영할 뿐 예술의 존재론적인 문제를 현학적으로 접근해가지 않는다.




테리 에드킨스 <조류수집> 

2014 철, 알루미늄, 은 사진 제공: 고동연




유작과 아카이브


이번 비엔날레의 또 다른 특징으로 작고한 작가들의 유작이 다수 등장했다는 점을 꼽을 수 있다. 대표적으로 4층에는 필립 반데하이든(Philip Vanderhyden)이 1980년대 픽처 제너레이션에 속하는 그레첸 벤더(Gretchen Bender)의 <괴로움 속에 있는 사람들>(1988)을 새로 구축해서 전시하고 있었다. 유사한 맥락에서 리처드 호킨스(Richard Hawkins)와 카트린느 오피에(Catherine Opie)는 1990년에 에이즈로 사망한 학교 동료 토니 그린(Tony Green)의 유작을 골라서 전시했다. 또한 엘름스가 기획한 2층에는 작가단체나 이론가가 상징적인 인물들의 자료들을 보존해서 조성한 아카이브를 선보였다. 이 아카이브에서는 생산자 대신 그것을 정리하고 보존하며 전시해온 소비자, 혹은 기획자가 작가의 역할을 수행했다. 2007년에 결성된 작가 공동체 ‘공공소유자들’은 시카고 출신의 유명한 시위자이자 실험적인 음악의 기록자였던 말라치 리처(Malachi Ritscher, 2006년 시카고 고속도로에서 시위 도중 자신의 몸에 기름을 뿌리고 자살했다)의 1980년대부터 2006년을 아우르는 아카이브를 마련했다. 또한 조셉 그리즐리(Joseph Grigely)는 우연히 뉴저지 한 창고에서 발견하게 된 비평가이자 작가 그레고리 바트콕(Gregory Battcock)의 개인 자료를 함께 선보였다. (우리에게도 잘 알려진 비평가, 바트콕의 죽음은 현재까지 미제의 사건으로 남아 있다.) 




조 레오나르드 <카메라 업스큐라> 

2014 945 Madison Avenue의 모습이 비춰짐 

Photo Courtesy of Suzanne De Chillo 『The New York times』  




과연 누구의 미국인가?


‘우리시대의 회화를 재조명하고 망자에 대한 기록에 집중하고 있는 보수적인 이번 비엔날레에서도 ’미국‘의 모습이 어떻게 재현되고 있는지는 중요한 관전 포인트이다. 사회비판적인 담론을 형성하는 것이 휘트니 비엔날레의 또 다른 전통이어 왔기 때문이다. 코머가 기획한 2층에서 케이스 메이어슨(Keith Mayerson)의 <나의 아메리칸 드림>은 아브라함 링컨, 슈퍼맨, 배트맨, 제임스 딘, 미국의 일반 가정의 초상화들로 벽을 빼곡히 채웠다. 냉소적으로 이해될 수도 있는 제목과 달리, 오히려 자신의 환경을 이해하고 이를 반영하려는 작가의 소박한 태도가 두드러진다. 작가는 지난 20년간 표현주의적이면서도 사실주의적인 화법을 사용하며 대중에게 쉽게 어필할 수 있는 미국인들의 초상화를 제작하여 왔다. 한편, 같은 층에 위치한 스타이너(A. L. Steiner)의 작업은 절박하고 비평적인 미국의 면모를 다룬다. 스타이너는   <비용-대비 혜택 해석>(2014)에서 구타의 흔적이 있는 여자, 퀴어, 성전환과 여인과 같은 다양한 여성의 사진들을 벽 전체에 붙였다. 그리고 여성운동자들의 삶을 제작한 다큐멘터리를 통해 이들을 영웅도, 그렇다고 무능력자들도 아닌 고군분투하는 우리 시대의 진정한 이웃들로 표현하고 있다. 덧붙여 4층 입구에 위치한 다우드 베이(Dawoud Bey)의 오바마의 초상화는 미국 내 인종차별의 문제에 있어 이중적인 의미를 지닌다. 인종평등의 환상을 지속적으로 생산해내고 있는 미국의 정치, 미디어에 경종을 울린다. 




리자 앤 아우어바흐 <미국적인 잡지 #2> 

2014 잉크젯 프린트, 24페이지 사진 제공: 고동연  




휘트니 비엔날레와 휘트니 미술관


마지막으로 휘트니 미술관의 정체성을 다시금 되짚어 보는 작업들도 선보였다. <카메라 옵스큐라>는 건물 4층의 비스듬한 창문을 이용해서 미술관 밖의 75가 메디슨가의 풍경을 전시장 안으로 비췄다. 반세기에 이르는 미술관의 물리적이고 건축적인 정체성을 되짚어 주는 작업이다. 반면, 휘트니 미술관 컬렉션 중에서 방출한 작업들로 이루어진 <지시하는 기계들>은 미술관의 미학적 정체성을 되묻고 있다. ‘휘트니 미술관의 소장품은 어떠한 기준에 의하여 선택되고 버려져 왔는가?’, ‘소장할 만한 가치가 있는 미국적이면서도 동시에 실험적이고 역사적인 가치를 지닌 예술작품의 기준은 과연 무엇인가?’ 다양한 매체들이 어우러진 이번 비엔날레에 대해 비평가들은 “꽉 차 있지만 비어 있다,” 혹은 “아트 페어 같다”는 의견들을 내놓고 있다.  전체적으로 회화의 복귀가 눈에 띄고, 매체의 혼합적인 양상이 부각되어 시각적인 측면에서 더 자극적이고 흥미로운 작업들이 많았던 사실에 기인한다. 또한 이제까지 휘트니 비엔날레에 선보여온 정치적인 이슈를 담은 작업들이 전시의 전면에 드러나지 않았음을 의미한다. 앞에서도 언급한 바와 같이 사망한 작가들을 사물들로만 관객을 조우시키는 상황을 고무적이라고만 보기는 어렵다. 


많은 비판들에도 불구하고 주요 미술계나 비평가들에 의해 간과되어져온 추상, 중년 이상의 여성 작가들의 작품들이 다수 포함되었다는 점에서 2014 비엔날레는 휘트니의 또 다른 전통을 계승하고 있다고도 볼 수 있다. 휘트니 미술관은 1929년, 동시대 미국 작가들에게 관심을 보이지 않았던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이나 뉴욕 현대미술관에 대한 대항마로 등장했다. 따라서 이번 비엔날레는 미국 미술과 작가들을 대변하려는 미술관의 본래 목적과 급변하는 동시대 미술계에 변화하는 기준들 사이에서, 기관의 정체성에 대해 다시금 질문을 던지고 있다. 특히 거대한 담론이나 이론 대신 현장에서 활동하는 작가들에게 귀를 기울였다는 점에서 이번 비엔날레는 주목할 만하다. 작가들의 스튜디오를 방문하고 이들과의 소통을 우선시 하였던 비엔날레 기획자들의 태도를 접하면서, 필자는 국내에서도 현장과 소외된 작가들을 대변하려는 노력이, 보다 공신력 있는 기관들에 의하여 진지하게 진행됐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본다.  



글쓴이 고동연은 2007년 귀국 후 동아시아 현대미술에서 역사성에 관한 연구를 진행해 왔으며, 이를 『Inter-Asia Cultural Studies』(영국, 러트리지)에 기고해 왔다. 이외에도 국제 미술잡지에 한국, 중국, 일본의 1990년대 이후 미술에 등장하는 노스탤지어, 소비문화, 물질문화와 연관된 글들을 발표하고 있으며, 이에 관한 책을 집필 중이다. 작가 지원프로그램의 심사위원과 멘토로도 활동하고 있으며, 작가들의 창작활동 전반을 아우르게 될 전시 <응답하라 작가들>을 기획 중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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