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ker | Art in Post |
---|---|
Origin | Made in Korea |
봄이 되자 호주의 미술관들은 새로운 전시와 이벤트를 선보이며 현대미술을 즐길 방법을 소개하기 시작했다. 그중에서도 멜버른에 위치한 빅토리아 국립미술관(National Gallery of Victoria, 이하 NGV)의 공공미술 프로그램을 눈여겨볼 만하다. 그롤로 에퀴셋 가든(Grollo Equiset Garden)에 설치된 세차장 콘셉트의 파빌리온은 ‘2016 NGV Architecture Commission’의 최종 선정작으로 멜버른을 기반으로 활동하고 있는 건축회사 M@ 스튜디오 아키텍트(M@ STUDIO Architects)가 디자인한 작품이다. 이들은 세차장이라는 친숙한 장소를 미술관 정원으로 옮겨 놓은 채 우리의 호기심을 자극하고 있다. 그러면서 묻는다, 세차장의 거품 속을 지나가고 싶었던 적이 있지 않냐고.
“Haven’t you always wanted…?” NGV는 멜버른의 중심지이자 미술관의 상징적인 장소인 그롤로 에퀴셋 가든을 활성화하고 호주의 떠오르는 젊은 건축가들의 활동을 장려하기 위해 2015년부터 건축 디자인 공모전을 실시하고 있다. 2015년에는 멜버른의 유명한 아트센터인 시드니 마이어 뮤직 볼(Sidney Myer Music Bowl)에서 영감을 얻은 존 와들 건축(John Wardle Architects)의 작품이 본 프로젝트의 첫 번째 영예를 누렸다. 아치형의 커다란 구조물이 멋스러운 그늘을 만들어내면서 미술관을 오가는 사람들에게 아름다운 휴식 공간을 제공했으며 설치 기간 야외 음악 공연장의 역할도 톡톡히 해냈다. 참고로 프로젝트를 시작할 당시 정식 명칭은 ‘Summer Architecture Commission’이었으나 올해부터 ‘NGV Architecture Commission’으로 변경되었다. 미술관 이름을 걸고 진행하는 만큼 NGV는 이 프로젝트에 상당한 공을 들이고 있으며 선정 작품을 위한 후원을 아끼지 않고 있다.
<Haven’t you always wanted…?> by M@STUDIO Architects for
the ‘2016 NGV Architecture Commission’ Photo: Peter Bennetts
비록 특정 기간에만 설치되는 일시적인 건축물을 설계해야 하지만 참가자들에게는 건축과 디자인에 대한 새로운 비전을 제시해야 하는 중대한 임무가 주어진다. 뿐만 아니라 환경을 생각하여 친환경 건축 재료와 재활용이 가능한 재료를 사용해야만 한다. 선정작은 단순히 시각적인 랜드마크에 그치지 않고 누구나 체험과 참여를 할 수 있는, 그야말로 ‘관객 지향적’인 작품이어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참가자들은 도시를 빛낼 아름다운 작품을 제작하는 것과 동시에 마켓, 라이브 공연, 퍼포먼스, 집회 등등 다양한 이벤트 장소로서의 기능까지 고려해야만 한다. NGV는 심미적이면서도 실용적인 공공미술 작품을 설치함으로써 미술관 앞마당이 멜버른을 대표하는 공간이 되기를 기대하고 있다.
2016년 공모작을 모집하면서 NGV의 관장 토니 엘우드(Tony Ellwood)는 건축과 디자인이 우리의 문화를 더욱 풍부하게 해주고 있다는 것을 강조하며 혁신적인 아이디어와 영감을 지닌 참가자들의 참여를 유도했다. NGV의 디자인/건축 부서가 주관하는 이 공모전은 총 두 단계로 진행되는데 첫 번째 단계에서는 디자인 제안서만으로 최대 5개의 프로젝트를 선정하고 두 번째 단계에서 작품의 퀄리티, 독창성, 실행 가능성 등을 평가하여 최종 선정자를 가린다. 심사위원은 호주 내 건축 관련 분야에서 활동하고 있는 전문가 4명으로 구성된다. 100여 개의 프로젝트가 접수된 가운데 치열한 경쟁 끝에 선정된 <Haven’t you always wanted…?>는 기발한 방식으로 도시 일부를 재고안한 작품이다.
<Haven’t you always wanted…?> by M@STUDIO Architects
for the ‘2016 NGV Architecture Commission’ Photo: Peter Bennetts
‘실재’를 전시할 수 없는 경우, 그러니까 도시의 한 구역이나 건물처럼 거대하고 복잡한 무언가를 전시할 수 없을 때 과연 어떠한 방식으로 이를 구현할 수 있을까? 다소 엉뚱하게 들릴지 몰라도 건물의 이동이 가능하다는 믿음으로 M@ 스튜디오 아키텍트는 멜버른의 블랙번(Blackburn) 지역에 존재하는 세차장을 미술관 정원으로 데려왔다. 정확히 말하자면 블랙번 세차장의 구조와 그 치수를 그대로 사용하되 기존에 볼 수 없었던 다공성(多孔性) 구조, 비현실적인 색 등 대중의 이목을 끄는 요소를 가미하여 새롭게 제작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일상의 건물이 미술관이라는 환경에 놓이면 ‘현실’에서 느낄 수 없었던 특별한 경험을 제공한다는 장점을 최대한 살린 것이다.
이로 인해 익숙한 것을 낯설게 하는 작품의 개념적인 측면을 강조하고 있다. 여기에 안개, 바람, 빛 등 비물질적인 재료를 사용하여 연극적인 효과를 극대화하고 있는데 그중에서도 안개가 분사되는 구획을 지나가는 것은 이 작품의 하이라이트로 손꼽힌다. M@ 스튜디오 아키텍트는 도시 디자인, 건축의 비물질화, 공공미술에 대한 여러 담론을 끌어내면서 세차장이 지닌 사회·경제적인 의미도 잊지 않았다. 지금껏 우리는 세차장과 그 주변 환경에 별다른 관심 없이 지내왔지만 번쩍거리는 조명과 간판, 흰색 타일과 콘크리트 바닥, 도로의 사인과 안내판 등 알고 보면 세차장에는 호주의 경제사가 숨겨져 있다는 것이다. 또한, 세차장은 마을, 교외, 도시의 표상으로서 도시 디자인과 건축의 유형학을 설명해 주기도 한다.
<Haven’t you always wanted…?> by M@STUDIO Architects
for the ‘2016 NGV Architecture Commission’ Photo: Peter Bennetts
한편 M@ 스튜디오 아키텍트의 작품은 호주 화가 하워드 아클리(Howard Arkley)와 제프리 스마트(Jeffrey Smart)의 회화를 연상시킨다. 아클리와 스마트의 작품은 전혀 다른 분위기를 풍기지만 두 화가 모두 호주 도시근교의 전형적인 모습을 묘사한 것으로 유명하다. 아클리는 자신의 고향인 멜버른의 주택가를 그리면서 거주자들의 장식적인 취향을 작품에 반영하기 위해 주로 형광색을 사용하였고 스마트는 근대화의 영향을 받은 호주의 도시 풍경을 그리기 위해 도로의 사인과 안내판 등을 작품의 소재로 선택하였다. 회화의 영향을 받아 현대적으로 재탄생한 <Haven’t you always wanted…?>는 결국 교외의 한 풍경이 건축으로 재현될 수 있다는 것, 그리고 기능에만 충실한 실용적인 건물도 때로는 이렇게 아름다울 수 있다는 사실을 환기시켜준다.
도시는 끊임없이 발전하고 확장되기 때문에 현대 미술에서 디자인과 건축 분야는 더욱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될 것이다. 전 세계 유명 미술관들이 이러한 시대의 변화를 인지하면서 디자인과 건축이 주가 되는 획기적인 전시와 프로그램을 선보이고 있듯이 NGV도 그러한 움직임에 한 발짝 다가섰다. ‘NGV Architecture Commission’은 현재 시작 단계에 불과하지만 앞으로 멜버른을, 그리고 호주를 대표하는 건축 공모전으로 자리매김하길 기대해 본다. 누가 알겠는가? 런던의 ‘서펜타인 파빌리온(Serpentine Pavilion)’ 혹은 뉴욕 현대미술관(MoMA, Museum of Modern Art, New York)의 ‘PS1 Young Architects’처럼 건축 프로젝트의 성공적인 사례가 될지.
글쓴이 김남은은 숙명여자대학교 사학과를 졸업하고, 홍익대학교 대학원 예술학과에서 「장-미셸 오토니엘의 작품연구」에 관한 논문으로 석사학위를 취득했다. 9년간 신한갤러리 큐레이터로 일하며 다양한 전시를 기획했다. 현재 캔버라에 거주하면서, 국내에 잘 알려지지 않은 호주 미술을 소개하는 전시를 준비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