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시대 주요 미술작가 중 한 명으로 꼽히는 양혜규. 서울과 베를린을 오가며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는 그의 전시가 국립현대미술관 서울에서 펼쳐진다. 이번 전시에서 양혜규는 ‘현실의 추상성’을 화두로 또 다른 도약을 시도한다. 생명체의 주요 에너지인 공기와 물은 자연 상태에서 화학기호처럼 순수하게 존재하지 않는다. 특정 물질을 정확하게 지칭하면서도 추상적 의미를 내포하고 있는 ‘O2 & H2O’, 이 은유적 제목은 그간 무형의 감각 경험을 미술적 추상 언어로 추적해온 작가의 관심사를 진화된 형태로 반영한다. 가정과 일상생활에서 흔히 쓰이는 오브제를 인체에 대응할 만큼 크게 만든 그의 신작 <소리 나는 가물 家物>은 물리적 규모의 확장과 증폭, 변형을 통해 보다 은유적이고 사유적인 의미를 함유한다. 이어 서울박스에 마련된 높이 10m의 움직이는 블라인드 조각 <침묵의 저장고-클릭된 속심>은 양혜규가 15여 년에 걸쳐 전개한 블라인드 설치의 최근 발전단계를 보여주는 대표작이다. 작품은 앞서 지난 2017년 과거 맥주 양조장이었던 베를린 킨들 현대미술센터(KINDL –Centre for Contemporary Art) 보일러 하우스에서도 선을 보인 바 있다.
<소리 나는 접이식 건조대- 마장 마술>
2020 이미지 제공: 국립현대미술관 사진: 명이식
이외에 물질과 상징, 에너지와 기술, 기후와 재해, 사회적 양극화 등 눈앞에 마주하고 있지만 감당하기 어려운 현상들이 소리 없이 붕괴된 작품들도 만날 수 있다. 디지털 콜라주 현수막 <오행비행>, 벽지 <디엠지 비행>은 현 문명에 대한 초현실적이면서도 현실적인 작가의 통찰을 그대로 투영한다. 전시는 과학적 사실계와 그 사실을 오롯이 인지할 수 없는 경험과 감각을 포함한 지각계, 기후, 재난 등 점차 극단으로 치닫는 현상계를 총체적으로 사유하며 매력적인 조형 언어로 풀어낸다. 또한 이번 전시 도록과 함께 출판되는 선집 『공기와 물: 양혜규에 관한 글모음 2001-2020』은 약 25년에 걸친 작가의 성장 과정과 작품 궤적을 접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전시를 한층 깊이 있게 감상할 수 있는 배경을 제공한다. 한국 현대미술의 현주소와 역동성을 확인할 수 있는 전시를 지금 만나보자. 9월 29일부터 2021년 2월 28일까지.
· 문의 국립현대미술관 서울 02-3701-9500